R&E 와 사람-"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
(R&E 지도교사 및 멘토의 역할)
오민욱 한밭대학교 교수
들어가며
"1993-2022"
나는 1993년에 한국과학영재학교(구 부산과학고등학교)를 입학하였고, 지금까지 Research와 Education에 몸담고 있다. 94년, 2학년이 되었고, 여름 방학이 지나서는 KAIST 진학이 확정되면서 2학기에는 교과과정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은 정확한 명칭이 기억나지 않지만, 일종의 Research를 2학기에 진행하였고, 모든 팀의 결과들을 정리하여 책자 형태로 제작하였다.
그때 우리는 책에 있는 물리, 화학 지식(기껏해야 대학교 1학년 수준이었을 것이다)은 있었지만, 연구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선행연구 조사도 없었고, 우리 연구의 독창성도 제시하지 못했고, 실험방법의 신뢰성도 확보하지 못했었다. 학기가 끝날 때쯤에 물리 선생님의 도움으로 겨우 실험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R&E의 시작
R&E(Research and Education)은 사사교육을 기반으로 "연구를 통한 교육", "교육을 통한 연구"를 의미한다고 한다1). 학생, 멘토, 지도교사 등이 팀을 구성한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2002년에 시범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시초이다2). 시간이 지나면서 R&E 구성원에 멘토가 추가되면서 학생들이 연구 전문가 지도를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94년에 내가 겪었던 어려움은 많이 없어졌을 것이다.
Research:Re-Search
연구(Research)란 무엇일까? 그 뜻을 구글에 물어보았다. 위키피디아에 나온 뜻을 해석하면 단어적으로는 "re"와"search"가 합성된 단어라고 한다. 나는 "다시 찾아본다" 정도로 해석하였다. 다시 찾아보는 과정은 선행연구를 분석하여 아직까지 풀리지 않았던 문제를 찾아내는 과정을 포함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 중, 선행연구에 너무 몰입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 도출에 도달하지 못하고, Re-Search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2010년에 그래핀의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안드레 가임(Andre Geim) 교수는 「때로는 "re-search"하지 않고 오직 "search"만 한다라고 가볍게 이야기하며, "해로운 영향을 미칠" 정도를 기존 자료를 이해하는데 시간을 투자하지 않도록 조심하였다」라고 하였다. re-search에서는 적당한 거리감 유지가 중요하다.
Systematic
Research의 좀 더 전문적인 답변을 찾아보았다. OECD자료에서는 "creative and systematic activity"와 "increase the stock of knowledge" 구절이 가장 선명하게 보였다3). 후자는 목적이고, 전자는 방법이다. 과학영재 창의연구 교원 매뉴얼에 나와 있는 많은 정의 중에는 "지식(진리)의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체계적 탐색활동"이란 정의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연구"라는 정의에서 공통적으로 "체계적(systematic)"이란 단어가 포함된다. 그렇다. 내가 94년에 했던 연구활동은 비체계적이었다. 연구의 체계성을 배우고 실행했던 것은 대학원에서였다. 주제를 탐색하고, 선행연구를 분석하여, 문제를 정의하였다. 실험을 설계하고, 실행하고, 결과를 정리하고 고찰하였다. 최종적으로 결론을 도출하여, (거창하게 말하여) 인류 지식의 진보에 기여하고자 하였다.
R&E 멘토
2017년에 처음으로 R&E 멘토 교수로서 참여하였다. 주제는 "부유식 태양광 발전모듈과 태양열-열전발전 융합모듈 제작"이었다. 태양광발전과 태양열발전의 차이점을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고, 태양광발전과 태양열-열전발전 융합모듈로서 예상할 수 있는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 연구 주제의 중요성, 필요성 등도 이야기하였다.
여름방학 때 학교에 와서 모듈을 만들고 물성을 측정하느라 고생한 학생들이 생각난다. 비가 오면 실험이 안 되고, 학교 운동장에 설치한 수조통이 없어지는 일도 있었다. 결국에는 신뢰성 있는 최종 결론을 도출하기에 충분한 데이터를 얻지 못하였다. 지도했던 학생들은 최종발표회에서 실험 결과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였다.
다양한 종류의 R&E 멘토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한국과학영재학교는 예산도 크고, 집중 연구기간도 길었다. 다른 영재학교, 과학고는 상대적으로 예산이 적었다. 학생들과 이야기해보면 매주 R&E 시간이 있었지만 매주 100%의 시간을 R&E에 투자하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고등학생이기 때문이다. 일반고등학교의 R&E에도 참여해 보았다. 예산은 가장 적었지만, 우리 학교와 같은 대전 지역 고등학교이기에 학교를 가장 많이 방문하였다. 참여 고등학생들과 함께 서울의 active noise canceling 기업을 함께 방문하기도 하였다.
멘토로 참여하면서 좋은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교수들은 자기 분야에서는 전문가일 수는 있겠지만, 다른 전문분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기에 공학 분야 R&E라는 큰 분류 안에서 선정되는 멘토 역할을 하다 보면 생소한 분야를 지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름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시간을 만들어 공부해야 했다. 논문도 찾아 읽어보고, 학생들의 계획서, 중간보고서, 결과보고서도 검토하여 피드백을 주어야 했다. 대전이 아닌 다른 지역의 학교도 방문하여 실험과정도 점검하였다. 생각보다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여야 하였다.
멘토도 성장해
올해도 지정주제형 R&E 멘토로 참여 중이다. 내가 제시한 주제를 학생들이 선택하면 멘토와 멘티 관계가 성립하게 된다. R. S. Peters에 따르면 교육의 필요충분 3가지 조건("교육은 ①지식의 전달이며 ②전달되는 지식은 가치가 있어야 하며 ③학생들의 흥미에 맞추어 도덕적으로 전달되어야 한다4)")이 있는데 지정주제형 R&E에서는 학생들의 흥미가 기반 되기 때문인지 교육의 효과가 높은 것 같다.
멘토를 몇 년 동안 해오면서 나도 R&E멘토로서 성장하였다고 믿는다. 교학상장(敎學相長):"가르침과 배움은 서로를 키운다"라는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말이다. 대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막연하게 내가 느끼고 있던 것이었는데, 본 기고를 쓰면서 검색을 통해 같은 뜻의 사자성어가 있음을 배웠다.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
R&E 구성원은 학생, 지도교사, 그리고 멘토이다. 학생을 태우고, 멘토와 지도교사가 두 바퀴가 되어 굴러가는 자전거와 같다. 멘토는 연구주제와 관련된 선행연구 결과 소개 또는 선행연구 결과 검색 방법 등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연구주제의 독창성을 극대화하도록 한다. 학생들이 설계한 실험방법의 체계성을 확인하고, 실험과정 중에 고려해야 할 변수 등을 점검한다. 연구 결론의 논리성, 정합성 등을 검토한다.
멘토는 학생 옆에 항상 있어 주지 못하지만, 지도교사는 학교에서 함께 있으면서 또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연구팀을 구성함에 있어 학생들의 역할 분담을 조정하고, 연구계획서 작성 등은 학생들이 주도하도록 교육하고 지도한다. 연구 수행 중에는 연구 추진 일정이 계획대로 진행되는지,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실험을 진행하는지 점검한다. 연구노트의 점검자 또는 확인자로서 학생들이 연구노트를 적절히 작성하도록 교육한다. 결과보고서 및 결과 발표 자료를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작성하도록 지도한다.
연구노트의 중요성
올해 각 분야별 과학영재 창의연구(R&E)연구노트가 개발되었다. 저자도 공학분야 연구노트 개발에 참여하였다. 국내외 대학에서 사용 중인 연구노트 및 연구노트 관리지침 등을 참고하여 개발되었다.
지도교사는 연구노트 작성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연구노트 작성법을 지도하여야 한다. 실험목적, 실험과정, 시료 정보, 분석정보, 분석결과 등의 필수기록 항목을 인지시킨다. 연구노트 작성 모범 예시 등을 참고하여 구체적으로 작성법을 지도하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연구노트 작성의 중요성을 학생들에게 교육하여야 한다. 연구노트 작성을 통해 효율적인 연구데이터 관리가 가능하며, 연구의 재현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연구노트는 논문작성, 특성 출원 시에 기초 데이터로 활용되며, 기술이전 및 특허 소송 시에 중요한 증거자료로도 사용된다.
연구노트의 점검자는 지도교사이다. 점검자는 정기 또는 수시로 연구노트를 점검하고, 점검일자, 성명 및 서명을 기록한다. 이때 점검자는 학생이 각 페이지에 기록자 성명, 서명, 기록일자를 작성하였는지 점검한다. 점검자에 의해 서명된 날짜가 발명일로 인정됨을 인지하고, 점검과 동시에 점검일자를 기록한다.
구슬도 잘 꿰어야...
학생들은 실험을 할 것이고 실험 데이터는 나올 것이다. 지도교사는 데이터 분석과 해석을 학생 주도적으로 하도록 지도하고 점검하여야 한다. 데이터 분석에 있어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 다양한 분석법을 학생들에게 교육한다면 연구결과 해석의 실효성이 제고될 것이다. 상관분석(correlation analysis), 회귀분석(regression), t-검정 등의 분석법이 대표적이다. 데이터의 오차, 불확실도 계산법을 학생들에게 지도함으로써 데이터 해석의 적절성 및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보고서는 심사자 또는 독자들과 대화할 수 있는 대표적 수단이다. 연구보고서는 사실에 기반한 수필과 같다. 베스트셀러 작품을 쓴다는 생각으로 기술해야 한다. 작품의 소재는 실험 결과물들이 되지만, 같은 소재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걸작과 졸작이 될 수 있다. 대중, 심사자의 관심을 끌 수 있어야 하며, 이 연구를 왜 하는지, 연구 결과의 중요성, 응용성 등이 잘 드러나도록 작성되어야 한다. 지도교사가 학생들에게 글쓰기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지속적인 교육과 점검 등을 실시한다면 잘 꿰어진 구슬 작품이 나올 것이다.
내가 경험한 많은 학생들은 멘토와 이야기 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보였다. 나도 고등학생 때는 그랬기에 이해가 된다. 그렇기에 지도교사가 멘토와 학생들의 중간에서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많이 해 주었다. 학생들이 멘토와 말문을 틔울 수 있도록 질문을 유도하고, 학생들을 독려하였다. 고등학교 일정을 고려하여 실험계획 및 멘토와의 미팅 일정 등을 적절히 조율하였다. 멘토와 지도교사가 함께 동행하며 서로의 속도를 맞추지 못하다면 자전거는 굴러가지 못하고, 학생들은 자전거에서 떨어지게 될 것이다.
- 1) 최호성, 강호감, 서혜애, 박일영, 이혁우, 이진희, 박경희, 박지현, "연구와 교육(R&E) 프로그램을 통한 과학영재의 창의성 신장 방안에 관한 연구", 한국과학재단 정책연구보고서 2002-5092 (2003).
- 2) 정현철, 채유정, 류춘렬, "과학고 및 영재고 Research and Education (R&E) 수행과정 및 운영환경 분석: 지도자와 학생의 인식 차이를 중심으로", 한국과학교육학회지, 32권 7호, 1139-1156 (2012).
- 3) Frascati Manual 2015: Guidelines for Collecting and Reporting Data on Research and Experimental Development, The Measurement of Scientific, Technological and Innovation Activities, OECD Publishing, Paris, France (2015).
- 4) R. S. Peters, "Ethics and Education", Routledge, Oxfordshire, UK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