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안녕하세요, 저는 2021년 화학분야의 R&E 활동을 수행한 한국과학영재학교 3학년 박우진입니다. 저희 팀은 박우진, 이준성, 김태훈 이렇게 3인 1팀으로 '금속유기골격체(MOF)를 코팅한 수정진동저울(QCM)을 이용한 단백질 측정 연구'의 주제로 1년 동안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사전 연구부터 발표 대회에 이르기까지, R&E 활동을 통해 저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고, 그 중 일부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저희 한국과학영재학교의 연구 커리큘럼은 창의설계활동, 연구방법기초세미나, R&E와 졸업연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먼저 창의설계활동은 1학년 1학기에 처음으로 진행되는 연구활동입니다. 수과학 분야의 20여 가지 연구 주제 목록이 정해지면, 학생들이 관심 있는 분야에 지원을 합니다. 이후, 3명이 한 팀을 이뤄 지도교사 1인 당 2팀을 이끌어 가며 한 학기 동안 연구를 수행합니다. 연구에 익숙치 않은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만큼, 심오한 이론을 다루거나 난이도 높은 실험을 진행하기보다는 학생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주제들을 정하여 선생님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갑니다. 1학년 2학기에 진행되는 연구방법기초세미나는, R&E 연구를 위한 역량을 키우는데 중점을 둡니다. 진행되는 활동 역시 논문 정독 후 발표, 보고서 작성, 연구노트 작성법 공부 등 본격적인 연구에 앞선 '맛보기' 형식으로 이루어지며, R&E 팀 매칭과 주제 제안 보고서도 이때 작성합니다.
다음으로 R&E는, 2학년 내내 진행되며 영재학교 연구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활동입니다. 3인 1팀(또는 2인 1팀)으로 구성된 학생들은 연구방법기초세미나 시기에 선정한 주제에 대해 지도교사 선생님과 논의하여 구체화한 후, 논문 검색부터 실험 진행까지 주도적으로 진행하여 4학기 말(2학년 2학기) 정식 논문 형식의 최종보고서 작성과 포스터, PPT 발표까지 이어나갑니다. 지도교사 선생님 역시 교내에 계신 선생님 외에도 외부 대학의 교수님과 연락하여 섭외하는 등 선택지가 광범위합니다. 이전까지의 연구활동은 선생님이 주가 되어 진행했다면, R&E는 순전히 학생들의 연구에 대한 의지와 열정에 따라 결과물의 질이 크게 달라집니다. 특히 3학기(2학년 1학기) 여름방학은 집중연구기간으로, 의무적으로 20일 이상을 학교(또는 교외 연구기관)에서 지내며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참여가 장려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 학교 R&E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차별점은 KAIST 교수님들이 최종발표회 심사를 맡는다는 점에서 수상 등급에 따라 창의재단 발표대회, 영재학교 발표대회, ISSF 등 다양한 확산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제공되며, 이는 학생의 연구 실적 뿐만 아니라 많은 경험을 제공합니다.
마지막으로 졸업연구는, 3인 1팀이 아닌 단독으로 3학년 한 해동안 진행됩니다. 다양한 대학교의 교수님께서 지도교수가 될 수 있는 R&E와 달리 교내 선생님 또는 KAIST 교수님만이 지도교수가 될 수 있으며, 전반적인 연구 진행은 R&E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발표회 등의 연구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활동이 없습니다.
한국과학영재학교의 연구 활동에 어느 정도 친숙해지셨다면, 이제부터는 저희 팀의 연구 주제 선정부터 발표까지 있었던 일들을 소개하겠습니다.
2. 체내 저밀도 지방단백질(LDL)을 제거할 수 있다면?
제 부모님은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으시는데,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받으신 건강검진 검사 결과, 아버지의 혈중 저밀도 지방단백질(Low Density Lipoprotein) 농도가 정상보다 높게 나왔습니다. 저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저밀도 지방단백질(지단백의 한 종류로 콜레스테롤을 운반하는데, 혈관벽에 과도한 콜레스테롤 침착을 일으켜 심질환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인체에 유해한 물질로 분류된다.)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때 'LDL을 제거하는 방법을 연구해볼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3. 꿩 대신 닭, LDL 제거 대신 측정으로
1학년 말, R&E 연구주제 제안서를 작성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고, 저는 팀원들과 제안서를 제출해 지도교사 선생님과 상의를 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팀원 모두 1학년부터 금속유기골격체(Metal-Organic Framework, MOF)에 관해 공부를 해온 터라, R&E 연구주제 역시 이를 활용해 진행하고 싶었습니다.
금속유기골격체란, 금속 이온 또는 단위체가 유기 리간드와 반복적인 배위결합을 형성해 만들어진 다공성 결정체로, 높은 표면적과 기능화 가능성으로 기체 흡착, 센서, 필터, 배터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신소재입니다. 쉽게 말해, 꼭짓점의 위치에는 금속 이온이, 모서리의 위치에는 유기 리간드가 위치해 반복적인 기하학적 구조를 형성하는 물질입니다. 이러한 꼭짓점과 모서리에 해당되는 다양한 금속 이온과 리간드의 조합 외에도, 합성 조건에 따라 한 꼭짓점에 붙는 모서리의 개수(금속 이온이 선호하는 배위 수) 등을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수없이 많은 종류의 MOF를 합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MOF의 높은 표면적은 많은 수의 구멍(pore)에서 기인하는 특성으로, 저희는 체내 LDL을 이러한 구멍에 가두어 배출하는 방식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상의와 자료조사를 통해 혈관 내벽에 축적되는 LDL의 특성상 MOF가 내벽을 침투해 LDL을 제거를 하긴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연구주제를 변경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던 와중, 선생님께서 LDL 제거가 아닌 측정으로 연구 방향을 바꿔보는 것에 대해 고려해 보라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추가적으로 논문을 찾아본 결과, Friedwald Equation이라는 계산방법으로 LDL의 체내 농도가 간접측정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해당 식은 몇몇 조건에서는 신뢰할 수 없으며, 이를 대체하는 직접측정법인 Homogeneous Enzymatic Colorimetric Assay는 LDL 외의 물질로 인한 측정값의 오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른 물질(중성지방, 빌리루빈, 헤모글로빈 등)을 제거하는 복잡한 전처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저희는 LDL을 정밀하고 단기간에 측정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연구를 진행하고자 했습니다.
4. DNA 염기 하나의 결합도 측정 가능한 수정진동저울(Quartz Crystal Microbalance, QCM)
'정밀성'과 '시간 효율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저희는 수정진동저울(QCM)의 개념을 가져왔습니다. 소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나노그램 단위의 정밀도를 가지고 있는 수정진동저울은, 미량으로 존재하는 체내 단백질을 정확하게 검출할 수 있다고 판단되었습니다. 저희는 단백질 측정의 특이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 MOF를 코팅한 QCM에 측정하고자 하는 단백질에 대한 수용체를 미리 부착하고, 단백질이 수용체와 항원-항체 반응을 통해 결합하는 방식을 생각했습니다. MOF와 수용체 사이의 결합은 히스티딘 태그-금속 이온(His-tag Metal Ion Interaction) 상호작용이라는 방식으로 제어하면, 아래 모식도와 같은 단백질 센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희 연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항원-항체 쌍이 규명된 거의 모든 단백질에 대해 빠르고 정확한 측정이 가능해질 것이며, 이는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은 체내 기작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줄 것이라는 큰 기대를 안고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5. 팀, 팀원 소개
본격적인 연구 과정에 앞서, 저희 팀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준성이와 태훈이, 그리고 저는 1학년부터 최은영 선생님의 지도 하에 금속유기골격체를 주제로 창의설계활동과 연구방법기초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외부 대회에도 같이 참여하는 등 친분이 있는 사이였기에 R&E 과정에서 소통의 어려움이 거의 없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되돌아보면, 저는 저희 팀 구성에 대해 매우 만족합니다. 다들 연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으며, 새로운 지식을 알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충만한 친구들입니다. 물론 초반에는 대다수의 팀이 그렇듯 서로 이해관계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서로의 방식을 고집하며 다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힘든 날들을 같이 실험실에서 보내면서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팀원들의 일부 모습들이 나중에는 장점으로 받아들여졌고, 그 점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자 노력한 결과 우정과 인정을 모두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R&E 활동은 단순히 개인의 연구 경험에만 발전이 되는 것이 아닌, 앞으로 있을 수많은 공동연구 과정에서 팀원 간의 다름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최대한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게 하는 능력도 기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QCM을 중점적으로 다루시는 안동대학교 응용과학과 유호연 교수님도 굉장히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교수님을 뵙기 전에는, '교수'라는 직업이 가지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교수님들이란 섣불리 접근하기 어려우며, 학생과의 상하관계가 명확히 나뉘는 분들이라는 고정관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유호연 교수님은 먼저 저희에게 다가와주셨고, 헷갈리는 개념이나 실험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오히려 교수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 덕에 저희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편하게 여쭤볼 수 있었고, R&E 활동을 하면서 QCM 뿐만 아니라 유학생활, 교수로서의 삶 등 교수님에 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과 팀원이 좋은 것과 연구가 예상대로 쉽게 풀리는 것, 이 두 가지는 별개였습니다.
6. 수도 없는 난관과 고난, 그리고 도전
기존에 공부하던 MOF 외에도 단백질 합성, QCM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다루다 보니, 목표로 했던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팀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투자해야 했습니다. 실험 장비와 단백질이 마련되지 않은 1학기에는 주로 논문을 찾아보며 부족한 지식을 보충했습니다. 저희 랩 뿐만 아니라 분광 기기 작동법을 배우고자 물리랩도 방문하고, 단백질 발현을 전공하신 선생님도 찾아 뵈며 유전자 단계로부터 단백질을 추출하는 방법을 공부하는 등 본격적인 실험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 열심히 뛰어다녔죠.
그러나 저희의 이런 노력을 하늘이 비웃기라도 하듯, 본 실험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연구인 만큼 회색지대가 매우 넓었고, 저희는 일일이 시도와 실패를 겪으며 범위를 좁혀가야 했습니다. 연구 과정을 대략적으로 설명 드리면, 크게 1) QCM 센서에 코팅할 MOF 후보군 선정, 2) QCM 센서에 MOF를 코팅하는 방법과 조건 선정, 3) MOF가 코팅된 QCM 센서의 단백질 정량 가능성 확인, 4) 단백질과 MOF 사이의 상호작용 규명의 네 단계로 나뉩니다. 그리고 각각의 과정 모두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냈습니다. LDL 수용체의 발현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지 않아 중도 포기를 해야 했을 때 녹색 형광 단백질(Green Fluorescent Protein, GFP)를 대체 단백질로 사용하거나, MOF가 성공적으로 QCM 센서에 코팅되었는지 여부를 기존의 기기로 분석이 힘들었을 때 새로운 기기로 분석을 시도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조금씩 나아갔습니다.
여름방학 때의 밤샘실험, 10 to 10 랩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연구노트는 150페이지를 웃돌고 있었고, 실험 데이터만 2GB가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완성되어가는 연구와 이에 대해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처음에 생각했던 LDL 정량화 단계까지 가진 못했지만, 단백질 센서로 GFP를 정량화 하였으며 주 상호작용 기작을 분석한 저희 연구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고분자 학회에도 발표하였습니다.
7. 2022, 또는 그 이후 R&E 연구를 진행할 친구들에게
2021 R&E 연구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케이스-바이-케이스(Case by case)였습니다. 저희 팀은 교내에서 연구를 진행했기에 팬데믹과 별개로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으나, 외부 대학의 교수님께서 지도하시는 팀들은 대부분 여름방학 때 집중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팬데믹 이전에도 그랬듯, 이러한 제약이 없어질 미래 상황에서도 R&E 연구는 팀과 개인의 목표, 역량에 따라 완성도가 결정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R&E는 주제 선정부터 발표까지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첫 연구가 될 것이며, 그만큼 수많은 실패와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1년 동안 진행되는 연구이지만 학교 생활과 병행하려면 한 주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적으며, 계획했던 실험이 성공으로 끝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반복된 실패로 인해 연구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는 분들도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실패가 지속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방법을 계속 찾으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실패를 해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여러분의 연구 역량에 있어서 큰 발전이 될 것이 때문입니다. 기대했던 만큼 성과를 얻지 못해도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R&E 연구는 여러분의 긴 연구 인생의 시작에 불과하며, 앞으로 겪게 될 수많은 실패의 맛보기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시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의 R&E는 결코 헛되지 않았으리라 확신합니다.
저희 지도교사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말을 들려드리며 마무리하겠습니다. Chemistry, Chem is try. 화학은 도전하는 학문이라는 뜻입니다. 화학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분야도 지속적인 도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학문도, 여러분도 발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실패한 만큼, 계속 도전을 한 만큼, 성장한 모습을 발견하실 거라 장담합니다. 이상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8. 감사 인사
연구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피드백 해 주시며 적극적으로 도와 주신 지도교사이신 최은영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QCM과 단백질에 대해 많은 지원을 주신 유호연 교수님과 안정훈 선생님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신 과학영재 창의연구 R&E 지원센터에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