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step
대영박물관은 영국의 여러 박물관들을 모두 모아서 부르는 이름이다. 그러기에 대영제국이라는 이름을 가져와서 '대영박물관'이라고 부른다. 그 중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yory Museum, London)은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그 곳에 머물고 있는 과학자들 또한 역사적으로 주요한 발견한 업적들이 넘치고 흐를 정도 이다. 웅장하며 고풍적인 건물의 주위는 정원에 둘러싸여 있다. 한참을 걸어 돌다보면 뒤쪽에는 과학박물관(Science Museum)이 있고, 옆으로는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Victoria & Albert Museum)이 있다. 런던 한 중간에 있는 이 커다란 공간 뒤로는 하이드파크 (Hyde Park)가 펼쳐져 있다.
자연사 박물관에 들어갈 때면 영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에서 본 듯한 커다란 문이 우리 앞에 서 있는데, 이곳이 박물관 정문이다. 이 공간에 들어가면 건물 안이라고 하기는 너무나도 큰 공간이 나타난다. 여기에 발을 디디는 누구든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들어 드높은 천장으로 바라보게 된다. 거기서 거대한 용각류(브라키오 사우르스)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자, 지금부터 박물관의 모험은 시작된다.
Scientist
아주, 아주 어릴 적,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숲 속의 어딘가, 바다, 때로는 공룡 뼈 앞에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멋들어지게 생물 이야기를 해주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자막으로 "Dr. ○○○" 라고 적혀있었다. 그 뒤로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적어내라고 하면, 막무가내로 '박사'라고 적어 냈다. 초등 4학년쯤이 되었을 때, 그 분들이 과학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는 종이에 '과학자'라고 적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공룡을 좋아했으며, 쉬는 시간에는 나뭇가지를 하나 들고 개미를 잡으러 학교 운동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학교 종소리가 울리는 쉬는 시간마다 개미들은 비상상태를 선포하였고, 우리는 그런 그들을 돋보기로 보면서 놀았다. 집에 가서는 공룡 책이나 개미 책을 들여다보았다. 봄에는 나비 애벌레를 찾아다녔고, 가을에는 메뚜기와 잠자리를 잡으면서 놀았다. 그걸로 방학숙제도 해버렸다. 그러던 와중 '바닷가보물'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물에서 사는 수룡을 처음 발견한 영국의 고생물학자 '메리 애닝(Mary Anning)'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화석을 발굴해서 그것을 판매하다니!! 그리고 그 발견물들이 모두 대영박물관에 전시가 되어 있다니!! 너무나도 멋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생물학자, … '고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이구나!… 나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과학자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책들을 조금씩 읽어보니, 박사라고 해도 이것저것 모두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떤 분은 로봇을 만들고, 어떤 분은 화학실험을 하고, 또 어떤 분은 생물을 관찰했다. 과학이라는 분야도 엄청나게 크고 전문 분야가 나누어져 있기에 어느 하나를 정하기는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정해두었다. 첫 번째는 고생물학자, 두 번째는 곤충학자, 세 번째는 … 천문학자.
Subject
중학교를 가니 과학 단원마다 각기 다른 분야의 과학이 하나의 교과서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어떤 단원은 너무 재미가 없기도 했다. 이럴 때는 그냥 재미있는 부분만 공부를 하면 되는 것이지… 뭐… 별거 있어?… 이렇게 나의 성적은 들쭉날쭉 변하기 시작했다. 다만, 발표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커다란 스케치북에 공룡 그림을 그려가서 앞에서 공룡 설명하기 시작했고, 남중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모든 친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다들 초등학교 때 공룡 좋아 했으니까… 그 당시 백과사전과 과학책들, 그리고 뉴스까지 다방면으로 찾아서 자료를 만들었는데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었다), 어떤 고생물학자가 화석화된 공룡 피부를 발견한 것이 있었다. 이때 흥분하며, 공룡의 피부와 색깔까지 이제 알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고 선생님조차 깜짝 놀랐었다. 발표가 끝난 뒤 몇몇 친구들과 함께 가지고 있는 각자 집에 있는 공룡 책들을 교환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한 학기를 보냈었다.
고등학교에서는 과학을 4개의 조각으로 쪼개어 주었다. 다행인거 같으면서도 고민을 하는 시기가 시작되었다. 생물이 좋은데, 생물 과목에서는 소화라든지, 호르몬과 같은 것을 외워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생태학이나 진화 같은 건 생물 단원들 가장 구석에 박혀서 언급도 잘 하지 않고 대충 넘어갈 것만 같았다. 그에 반면, 지구과학에는 지구의 역사라든지 광물, 공기, 바람의 흐름, 심지어 천문학까지 다루고 있었다. 더 이상 고민할 것이 없잖아. 지구과학2를 선택과목으로 선정했다(나는 지금 생물학과 교수이다). 공부를 하다 보니, 어떤 부분은 물리가 필요하고, 또 어떤 부분에는 화학이 필요했다. 결국 선택과목은 선택과목일 뿐 자유롭게 4개의 교과서를 모두 들고 있게 되었다. 모의고사 칠 때는 지구과학2의 성적이 반영되지만, 다른 과목도 모두 풀었다. 나에게는 공룡이 묻혀 있는 지층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아졌는데, 자연스레 외우기 싫어하던 지질구조의 단층 (정단층, 역단층, 수직단층… 등, 아직도 용어 자체는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다.)이 왜 생겨나게 되었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과학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문득 드는 의문이 생겨났는데… "나는 어떤 과학자가 될까…? 사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근데… 이건 쫌 싫어…"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편식하기 좋아한다. 재미있는 것은 끝없이 찾아보고 공부하지만, 싫은 건 손에 대지 않았다. 생물시험에서도 가끔 0점 받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몸속에서 소화기관과 소화액, 호르몬, … 당연히 외우지 않고 당당히 시험문제 틀리고 만다. 심지어 주기율표도 외워본 적 없다. 생각을 해보면, 대학원 가서도 주기율표를 사용해본 적이 없다. 다만, 그 표를 활용하는 방법은 안다. 벽에 하나 붙여 두면 볼 수 있으니까…
그렇다. 어떤 과학자라도 과학의 모든 분야를 머릿속에 외우고 있을 필요는 없다. 지금 여러 공식이나 이론들을 외우고 있지 않다고 하여, 고민하거나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하고 걱정하지 마시라. 본디 과학이라는 학문의 기본은 암기가 아니다. 과학자는 가장 기본적으로 눈으로 보이는 것을 기록하고, 정리하여 합당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생물이나 진화, 자연과학, 천문학 분야는 공식이나 계산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생각을 하면 그것이 이론이 되고, 계산하는 방법은 그것을 잘 하는 사람과 같이 연구를 진행하면 된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강연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걸 누가 몰라서 그러냐고… 여기서 한 번 더 되묻고 싶다.
"생각을 기록해본 적이 있습니까?"
"관찰한 대상을 기록으로 남겨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흔히 이런 이야기들을 듣는다. 어디의 과학자가 맥주를 마시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그게 대단한 업적이 되었다고… 또는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만들었다고… 진짜 그랬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처구니없이 세상의 여러 가지 면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 스스로 생각을 해보자. 생각은 언제 나는가?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컴퓨터 게임을 할 때도,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도, 누워서 잘 때도, 꿈을 꿀 때도, 심지어는 화장실에서도 생각은 나기 마련이다. 그 생각을 종이에 옮기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너무 단순한 일이지만, 이것을 실제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의 뇌, 머리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것을 마음대로 꺼내 쓰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생각이 이론이 되는 것이다.
지금 학교에서 과학 점수를 잘 받는다고, 또는 경시대회에서 입상을 했다고 해서 자랑을 하지 말자. 그저 답이 있는 문제를 시간 내에 풀었을 뿐이 아닌가. 훈련만 받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니 그런 문제를 잘 못 풀었다고 주눅 들어 있지도 말자.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사람도 어릴 적 수학, 과학 경시대회에서 여러 가지를 한 적이 있지만, 때로는 시험관이나 선생님들에게 문제가 잘못 되었다며 따지기도 했다. 당연히 문제를 열심히 풀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았을 때도 있다. 영재고, 과학고 진학을 위하여, 대학에 유리하기 가게 위하여, 이것을 따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딱 거기까지이다.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재미있게 바라보는 방법을 찾기 바란다. 이때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고, 적게 걸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때, 글을 수려하게 적는 방법도 있고, 말을 잘 하는 방법도 있으며, 발표를 통하여 타인을 이해시키는 방법도 있다.
실제로 대학원을 가면 무언가를 배우는 시간은 매우 짧다.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계획을 짜게 된다. 이때의 생각은 바로 이론이다. 그러면 예상되는 결과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합당함을 알리기 위하여 실험을 하게 된다. 신빙성을 높이기 위하여 반복 실험을 한다. 그것을 논문에 기록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논문 또한 누구나가 알아보기 편하기 위해서 일괄적인 형식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쓰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가 이와 유사한 과정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다.
Basic
대영박물관으로 돌아가 보자. 여기에는 자연과학자들이 주를 이루지만, 그 전에 박물학자 또는 수집가들의 역할이 매우 크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윈도 사실은 박물학자라고 할 수 있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생물/지리학적 통찰력은 모두 관찰한 결과에서 온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해결이 안 되는 문제가 많이 있으리라. 대표적인 예로 갈라파고스의 핀치새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품었다. 그러기에 당시 조류를 연구하던 존 굴드(John Gould)에게 새 표본들을 모두 보내었다. 굴드와 다윈은 서로 논의를 주고받았고,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론을 만들어 낸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핀치새의 그림은 존 굴드의 작업물이다. 비글호 항해기와 종의 기원을 읽어보시라. 항해기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다윈의 일기이다. 그 일기에는 다윈이 관찰한 그대로가 정확하게 글로 표현되어 있다. 종의 기원은 본인이 분석한 결과와 의견을 남겨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경우에도 그림과 함께 글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남겨놓았다.
"선생님, 저는 로봇이나 드론에 관심이 있어요. 건축에 관심 있어요. 이런 분야는 상관없지 않나요?"라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말을 꺼내기 전에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정교한 설계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예전 공대 실험실에서는 펜을 들고 커다란 종이에 자를 가지고 아주 세세한 그림을 그렸다. 지금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도면이나 설계를 한다. 3D 형태로 만들기도 한다. 기록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CAD 프로그램(Computer Aided Design)을 잘 쓴다고 하여 설계를 잘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그냥 손으로 그리는 때가 더 좋은 경우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자신의 분야 선택에 있어서 제한을 두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관심 있는 분야는 계속하여 변하기 마련이다. 나는 어릴 적 공룡과 개미에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잘 생각을 해보면 진화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던 것이고, 공룡이 뛰어다니던 시절의 곤충에 대해서 궁금했다. 왜냐하면 곤충은 공룡 이전부터 하늘을 날아다녔으며, 지금도 그러하기 때문에 진화 연구에 가장 좋지 않을까. 하늘을 날아다니던 거대한 잠자리는 지금 왜 없을까. 이런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이다. 한 번에 답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런 저런 연구를 하면서 각각의 퍼즐 조각을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축적된 많은 연구(심지어 이상한 연구라도)는 나에게 새로운 생각을 가져올 수 있다. 나는 기껏해야 100년 이상을 살 수가 없고, 지금껏 수백 년 동안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를 해놓은 것을 찾아서 볼 수 있다. 그런 것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자연사박물관, 과학관, 연구소 들이다. 대영박물관에 근무할 시절, 가장 즐거웠던 점이 바로 이 점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곳에 들어가서 일을 하는 게 목표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에 있는 지금도, 궁금하거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가 궁금하다면 담당자에게 전자 우편(e-mail)을 보내면 답변을 해준다(과학자들과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친절하다). 자신이 재미있는 생각과 이론을 가지고 있다면, 그 곳에서 당신을 먼저 부를 것이다. 그리고 그 곳이 꼭 대영박물관이 아니라도 관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