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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모방과 생체접착소재 개발을 통한 의료기술 혁신
차형준 석좌 교수(POSTECH 화학공학과 & 융합대학원 의과학전공)
생물모방공학: 최적화된 생물로부터 배운다
등산 해서 산 정상에 올라가거나 롯데타워 같은 아주 높은 고층 건물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경험을 대부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평소 크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아주 작게 보인다. 이때 혹시 지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본 적은 있는지? 나는 가끔 이러한 높은 곳에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지구의 주인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사람마다 다양한 답변이 나올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지구의 진정한 주인은 식물이다. 높은 곳에서 보면 아래에 보이는 것은 거의 녹색을 띠는 것들이다. 도심에서는 회색의 콘크리트 건물이 더 많이 보일 수도 있지만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주위는 온통 녹색이다. 이러한 색을 만드는 것은 바로 나무와 같은 식물이다. 비록 식물은 움직일 수 있는 생명체는 아니지만, 지구에서 다른 생명체들을 살게 하는 가장 중요한 탄소원 생산자이다. 태양 빛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탄소원으로 이용하는 식물이 없다면 지구의 대부분 생명체들은 존재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실제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들을 이루는 탄소는 바로 식물이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이용해서 만드는 탄소원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녹색의 식물들이 가득한 자연환경을 생각하면 우리는 마음이 편해지고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은 아니다. 자연에는 매우 덥고 건조한 사막과 같은 곳도 있고 매우 춥고 얼음으로 덥혀 있는 설원 지역도 있으며 기압이 낮고 추운 높은 산과 같은 지역, 매우 습하고 더운 열대 우림 지역, 매우 뜨거운 온천이나 화산 지역, 그리고 온도가 낮고 염도가 높은 바다도 있고 매우 기압이 높고 빛도 전혀 없는 심해 지역도 있다. 이러한 매우 거칠고 극한적인 환경도 자연의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의 자연환경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환경의 자연에서도 다양한 생명체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적응하며 생존해 살고 있다. 실제로 지구의 어떤 환경에서도 생명체가 발견되지 않는 곳은 없다. 물론 생명체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단일세포로 이루어진 단순한 원핵생물인 박테리아로부터 다세포로 이루어진 복잡한 진핵생물인 식물과 동물,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생명체는 자연환경에서 존재한다. 이러한 생명체들은 아주 오랜 기간을 통하여 생존을 위한 가장 최적의 방법으로 다양한 지구의 환경에서 진화되어 왔다. 즉, 그들만의 생존 노하우와 방어 시스템을 가지고 자연에 순응하며 때로는 저항하여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물은 가장 잘 최적화되어 있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우리는 최적화된 다양한 생명체들을 탐구하고 연구함으로써 우리에게 유용한 물질이나 소재, 제품들을 발견하고 개발하여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예로부터 질병을 고칠 수 있는 많은 생리활성물질들이 다양한 식물로부터 발견되어 사용되어 왔고, 곰팡이에서 발견된 페니실린 항생제도 대표적인 유용물질의 경우이다. 특히, 현재 3,000종류 이상의 항생제가 미생물로부터 얻어지고 있고 많은 의약품에 동식물로부터 추출된 성분들이 사용되고 있다. 신종플루의 치료 약으로 알려진 타미플루는 중국 토착 식물인 스타아니스에서 추출한 물질을 활용해서 개발한 항바이러스 천연신약이다. 고대 시대부터도 발효를 통해 에탄올을 만들어 술로 사용해 온 것은 생명체의 가장 오래된 인류 생활에의 활용이며 최근에는 원유로부터 만들던 에너지나 다양한 화학물질들을 미생물로부터 만들려는 연구도 수행되고 있다. 또한 미생물들을 이용하여 환경 오염물질을 흡수하거나 분해하여 물과 토양 등을 정화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 더욱 자연의 생물을 직접 모방하고 활용하여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을 만드는 생물모방공학 연구들이 각광을 받으며 많이 진행되고 있다. 생물을 모방하는 것에는 형태나 구조를 모방하는 것과 생물을 구성하는 물질이나 소재를 모방하는 것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형태나 구조를 모방하는 생물모방은 예를 들어, 엉겅퀴를 모방하여 가방이나 신발에 사용하는 일명 찍찍이라고 하는 벨크로의 개발과 연잎의 표면구조를 모방하여 방수와 자기 정화 특성을 가지는 표면을 구현하려는 연구가 대표적이다. 연잎은 아주 작은 나노 크기의 돌기들을 표면에 가지고 있으며 이 니노 구조가 물이 표면에 붙지 못하게 하고 작은 먼지들을 함께 씻겨 나가게 하는 특성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구조를 모방하면 우리는 청소를 할 필요 없이 비만 오면 깨끗해지는 자기 정화 유리창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아무런 곳에도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게코라는 작은 도마뱀의 발바닥 표면의 나노 구조를 모방하여 접착 소재로 개발하는 것도 유명한 구조모방의 사례이다. 그러나 형태나 구조를 모방하는 생물모방은 많이 이루어지는 반면에 구성 물질을 모방하는 것은 물질의 분자 차원의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아직은 많은 예들이 있지는 않다. 거미줄의 성분인 실크단백질을 유전공학적으로 만들어 기계적 강도가 필요한 분야에 재료로 사용하려는 연구가 진행 중에 있고 해파리에서 유래하는 형광단백질을 인체 질병을 모니터링하는 리포터 물질로 개발하는 연구가 대표적인 구성 물질 모방의 예이다. 또한, 저자의 연구팀에서 20년 이상 수행하고 있는 해양생물인 홍합에서 유래하는 생체접착 소재도 중요한 물질모방 생물모방공학 기술이다.
(출처: POSTECH MAGIC연구실)
홍합 모방: 인류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생체접착 소재 개발
바다에는 돌이나 구조물에 부착해 살아가는 해양생물들이 많다. 홍합, 따개비, 굴 등이 이러한 부착성 생물들이다. 이러한 부착성 생물들은 수중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접착제를 만든다. 이 중 홍합은 저렴하면서도 맛이 있고 영양가가 높아 우리의 식탁에 자주 오르는 친숙한 해산물이다. 예로부터 홍합탕은 붉은 빛깔의 홍합 속살도 좋지만 우려낸 국물이 서민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조미료 주성분인 글루탐산이 풍부하고, 아미노산이 많아 감칠맛이 난다. 특히, 홍합은 간에 쌓인 해독을 풀어주는 천연 피로회복 물질인 타우린을 많이 가지고 있다. 또한, 홍합에 들어있는 베타인 성분도 타우린과 함께 숙취 해소 효과를 내는 주요 성분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가 홍합의 가치를 우리가 먹는 해산물 말고도 다른 측면으로 부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별로 없을 것이다. 홍합을 바닷가의 배나 바위 등의 표면에 아주 강하게 붙어 있기 때문에 손으로는 홍합을 채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홍합은 접착 표면을 가리지 않는다. 바위, 스티로폼, 배의 금속 표면 등 어디든 달라붙을 수 있다. 이러한 강한 접착력은 바로 홍합이 만들어내는 접착제로부터 나온다. 어떻게 홍합은 물이 있는 환경에서도 바위와 같은 구조물에 강하게 붙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하여 1980년대부터 홍합의 놀라운 접착 특성에 집중하여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홍합은 자신이 접착할 표면에 발을 뻗고 그 내부의 얇은 관안으로 접착 물질을 매우 높은 농도의 액체 상태로 분비한다. 이 접착 물질은 얇은 섬유 다발로 구성된 족사 가닥과 그 끝에 직접적으로 표면과의 접착을 수행하는 플라크를 만든다. 족사 가닥과 플라크로 이루어진 하나의 족사는 약 5분이라는 빠른 시간 안에 경화되어 강력한 표면부착을 완료한다. 족사 가닥에 분비된 접착제로 약 10킬로그램 이상의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접착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홍합이 족사를 20개만 가져도 200킬로그램의 매우 커다란 접착력을 가진다고 간단하게 계산할 수 있다. 홍합이 만들어내는 이 접착 물질이 단백질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발견된 이후에 이 접착단백질을 의료용 소재로 이용하고자 하는 연구가 현재까지 수행되고 있다.
(출처: POSTECH MAGIC연구실)
우리 몸은 70% 이상이 물(혈액, 체액 포함)인 수중 환경이다. 바다의 환경은 인체 환경과 매우 유사하므로 바다에서 작동하는 접착제는 우리 몸에서도 작동을 잘 할 것이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인체 안에는 약하고 움직임이 많은 내부장기가 많기 때문에 유연한 접착이 필수적이다. 실제 홍합이 만드는 단백질 접착제는 다양한 표면에 강력하면서도 유연하게 접착하며 수분에 강하다는 장점을 가지며 생분해성 특징과 함께 인체에 무해하기 때문에 의료용 생체접착제로 가장 가능성이 매우 높은 소재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직접 홍합에서 접착제를 추출하여 분리해 내는 경우는 얻을 수 있는 양이 매우 적어 실제적인 용도 개발은 불가능했었다. 이에 분자생명공학기술이 접목된 미생물세포 배양법을 이용하여 대량생산과 표준화가 가능한 생산 기술이 개발되어 현재 다양한 의료분야에의 실제적 적용 기술과 실용화가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우리 몸 안에서 안전하게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의료용 접착제가 전 세계적으로도 존재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수한 접착 특성을 가지며 인체에 무해한 홍합 접착단백질을 이용한 새로운 의료용 생체접착 소재는 일차적으로 절개된 피부나 조직 및 부러진 뼈의 접착이나 장기이식, 지혈제로의 활용이 가능해 머지않은 미래에 수술용 봉합사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저자의 연구팀을 통해 수술 시에 체액에 노출되어 있는 환경에서도 높은 조직 접착력을 요구하는 내부 장기의 접합과 폐쇄에도 사용할 수 있는 의료용 수중 접착제와 무해한 청색광을 이용해 빠른 시간 내에 피부조직을 결합할 수 있는 의료용 순간접착제의 두 종류로 생체접착제가 개발되어 기술이전을 통하여 기술사업화가 진행되고 있다. 두 종류의 생체접착제 모두 생체에 무해한 반응을 통해 안정적인 조직 결합이 가능하며 상처 재생에서 매우 우수한 효과를 가짐이 확인되었다.
수중 환경인 우리 몸 안에서 조직 접착을 하려면 수중 접착이 가능하여야 한다. 개발한 의료용 수중 접착제는 물에 녹아 있는 단백질 접착제를 바다의 갯지렁이가 만드는 수중 접착제 원리인 액상-액상 분리 현상을 도입하여 물속에서도 와해되지 않고 진정한 수중 접착이 가능하도록 만든 제형이며 이를 통하여 내부장기의 접합이나 구멍이 생기는 누공 또는 천공의 폐쇄와 같은 다양한 접착이 필요한 인체부분에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의료용 순간 생체접착제는 홍합접착단백질에 무해한 빛인 가시광선 기반의 효과적인 제형화 기술을 접목시켜 수술 시 빛을 이용해 효과적이고 순간적으로 적용 가능한 방법이며 봉합사와 달리 흉터를 거의 만들지 않는 커다란 장점을 가진다. 빛을 이용한 가교 시 형성되는 결합 물질은 주로 곤충의 관절 및 힘대 등과 같은 구조체에서 주요하게 발견되는 결합 물질로, 이를 모사할 수 있는 손쉽고 무해한 광 반응을 적용함으로써, 즉각적이고 안정적인 조직 결합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현재 홍합 접착단백질을 이용한 의료용 순간 생체접착제는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신약의 낮은 성공 가능성을 대신할 수 있도록, 기존 약물의 효율적 탑재와 전달을 통해 치료 효과를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약물 전달 기술이 하나의 새로운 의약품의 일환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홍합 접착단백질은 다양한 의약품(저분자 약물, 단백질, 유전자, 줄기세포, 면역세포 등)의 국소적 전달체로서도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항암 약물을 넣은 홍합 접착단백질로 만든 접착성 나노입자를 암조직에 뿌리면 항암 약물을 가지고 있는 나노입자가 암세포 안으로 들어가서 암을 사멸시키는 약물 전달 치료가 가능하다. 최근에 미래 치료기술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 줄기세포 치료이다. 혈관에 문제가 생겨 심근벽이 괴사되는 심근경색의 경우 줄기세포 치료가 시도되고 있지만 심장의 압력 때문에 줄기세포를 주사하였을 때 대부분의 줄기세포가 바로 없어져 치료효과가 매우 미미하다. 수중에서 와해되지 않는 홍합 접착단백질 제형을 이용하여 줄기세포를 전달하면 심근경색이 일어난 부위에 줄기세포를 획기적으로 오랫동안 잔존하게 해서 치료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에 홍합 접착단백질의 의료분야에서의 다양한 활용이 크게 기대된다.
마무리
생물은 다양한 지구의 자연환경에서 적응하여 최적화된 존재이다. 그러므로 자연환경과 생물의 관계를 잘 파악하고 이해한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유용한 물질 또는 소재들을 생물로부터 찾거나 모방하여 우리의 실생활에 성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에 자연의 생물들을 잘 확보하고 보호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같은 종류의 생물이라고 하더라도 지역 환경에 따라 그 특성은 크게 달라지며 이로부터 우리가 찾아내거나 모방할 수 있는 대상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자연의 생물 보다 더 우수한 인공적인 것은 없다는 진리를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